less.. 2. 제 2장: 수와 공, 연애의 특징(실증적 자료 위주)
남성과 남성의 연애를 다루면서도, 왜 야오이 소설의 연애는 그들의 성별을 제외한다면 헤테로 섹슈얼적인 텍스트에서 묘사되는 연애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인가? 왜 그들은 성별이 같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의식도 하지 않은 채 쉽게 연애에 빠져드는가?
헤테로섹슈얼과 호모섹슈얼의 경우, 연애는 상대의 성별을 인식한 후에 시작한다. 최초에 성별이 문제가 되고, 그 후에 개성이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바이섹슈얼이라고 해도, 최초의 단계인 성별인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는 말할 수 없다. <후지미フジミ(야오이 소설 중 전설적인 히트를 기록한 <후지미 교향악단> 시리즈의 줄임말:역주)>에서의 연애는, 그 수순을 역전시키고 있다. 상대의 개성 다음에, 성별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성별을 넘어, 기존의 섹슈얼리티의 코드를 넘어, 복잡하게 중층화된 불가사의한 섹슈얼리티. 그 "제 4의 섹슈얼리티"라고도 부를 만한 것을 갖춘 모리무라守村와 토우노인桐ノ院의 관계는 본질적으로는 호모섹슈얼조차 아니다.
동성끼리라고 하는 점에서는, 호모섹슈얼이라는 용어를 붙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대상이 성별이 아니라, 개성으로 선별되고 있는 이상, 그 본질에는 호모섹슈얼이라는 용어에는 포함되지 않는 요소가 존재한다. 기호상 헤테로섹슈얼을 답습한 것처럼, 실제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호모섹슈얼조차도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중간생략)... 야오이 소설에 있어서 성(젠더/섹스/섹슈얼리티)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이 극히 혼란스럽다. 기성의 성개념의 기호를 교묘하게 사용하므로,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이야기로서 읽을 수 있는 야오이소설이지만, 실은 그 내부에는 깊은 혼돈을 숨기고 있다. 후지미로부터 추출된, 새로운 섹슈얼리티의 양상은 그 혼돈에 명확한 형태를 부여하기 위한 중요한 힌트가 될 것이다. (137-138쪽)
나카쿠보에 따르면, 야오이 소설에 있어, 가장 특징적인 것은 대부분의 일반적인 소설텍스트가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는 "이성을 사랑한다"는 이성애 코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전히, 1장에서 제시되었던 것처럼 수와 공의 여성성과 남성성의 상대적 배치체서도 알 수 있듯이, 소설의 커플들은 헤테로적인 커플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텍스트의 안정성을 위한 것이다. 즉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헤테로 섹슈얼적인 커플의 모습을 하면서도 그 내부에서는 호모섹슈얼이므로, 기존의 이성애 코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또 그 점이 이런 코드를 따르지 않는 커플링에 있어서는 (과연 누가 수/공이 될 것인가를 두고 곤란해 하는 코미디를 생각해 보라), 새로운 갈등을 부여하게 된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같은 남성으로서 이들의 관계성은 남녀가 커플로서 성립할 경우 자유로울 수 없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억압에서 보다 자유롭다는 것이 나가쿠보의 주장이다.
또한, 아무리 수가 아름답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성이 아닌 남성의 것이므로, 남성에게 일반적으로 기대되지 않는 가치로서 독자는 그것을 마음 편히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20쪽)
또한, 이런 이성애 코드의 배제와 관련하여 야오이 소설의 연애에서 가장 핵심은 그 무엇보다 <젠더 및 섹슈얼리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로서,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절대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야오이 소설이 남자와 남자간의 연애관계를 설정할 때, 흔히 헤테로였던 두 남자가 그런 섹슈얼리티의 제한을 넘어서서조차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는- 즉, 성적으로 본능적으로 끌린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존재를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스토리가 많았던 것에 비해, 현대의 야오이 소설은 처음부터 게이인 캐릭터를 흔히 등장시킨다. 그러나 이런 게이로서의 캐릭터는 텍스트에 심각한 모순을 가져오게 되는데, 바로 저 성적인 본능에서 자유로운 사랑, 즉 전존재를 긍정하는 사랑이라는 야오이 소설의 핵심적인 원리를 자칫 벗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후시미 교향악단 시리즈에서 게이인 공 토우노인 처럼)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한쪽이 게이이거나, 혹은 양쪽이 게이로 설정된다고 할지라도, 결말에 가까워 올 수록 그들의 연애는 절대적인 것으로 변해가며 또 최후에 그들의 섹슈얼리티는 바로 위의 상자 안에서 논의된 것처럼 "제 4의 섹슈얼리티"로 변해간다는 점이다. 물론 당연히 헤테로인 경우에는, 많은 경우 강제적으로 가해지는 육체적 쾌락으로부터 스스로의 헤테로적인 성정체성을 포기하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으로 변화함으로써 또 다른 섹슈얼리티로 변화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헤테로섹슈얼에서 호모섹슈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재미있는 것이다. 즉,
호모섹슈얼인 성정체성->여전히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적인 대상으로 삼는 것은 상대방 한 사람
헤테로섹슈얼인 성정체성-> 변화하여 호모섹슈얼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성적인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쪽도 상대방 한 사람
즉, 둘다 전혀 실제의 호모섹슈얼과는 다른 성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즉,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야오이는 호모섹슈얼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이야말로, 현실 속의 게이 커뮤니티가 야오이적 환타지에 대해 가장 극렬하게 반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분석에서 한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을 덧붙이면, 성역할의 고정화 (즉 수 VS 공이라는 고정된 관계성)는 거의 대부분의 텍스트에서 발견된다는 것 또한, 실제의 게이 커뮤니티와 또 다른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제 3장: 여성용 성애(에로)소설로서의 야오이 소설의 혁신성과 의미
- 남성향 에로소설은, 레이프(강간)만을 그린다.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오히려 레이프밖에 그리지 않는다. 야오이소설의 경우, 최초의 성행위를 레이프로 하는 텍스트는 많다. 그러나 그 텍스트도, 수와 공의 연애관계가 성립하거나, 혹은 어떠한 애정이 있다는 것을 인식한 후에는 명확한 레이프이 행해지는 경우는 없다. 한 텍스트 안에서, 명확한 레이프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합의의 성행위도 그려진다. 이 합의 위의 성행위에 의해 에로티시즘을 만들어낸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야오이 소설>의, 에로 소설로서의 혁신성인 것이다. (316쪽)
- (주인공들이) 남자들인 이유로부터도 확실해진 것처럼, <야오이 소설>은 뛰어난 헤테로적인 텍스트인 것이다. <야오이 소설>의 여성 <독자>의 성적욕망의 벡터는 직선적으로 남성을 향하고 있다. <독자>의 능동적인 "사랑하고 싶다"는 욕구는, 남성에 동일화하여, 남성신체를 경유함으로써 남성동성애적 행위에 변환되어 버린다. <독자>의 수동적인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도, 젠더적 억압을 배제하므로, 남성에 동일화하여 남성신체를 경유하고 동일하게 남성동성애적 행위로 변환된다. 어느 쪽의 욕구의 형태도, 동일화의 대상이 남성이고, 그 동일화가 동시적이므로 표층적으로는 호모섹슈얼(남성동성애)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독자>가 남성에 직접적으로 보내고 있는 성적욕망의 벡터는, 깨끗하게 은폐되는 구조인 것이다.
야오이 소설의 이 은폐는, 너무나 완벽하여 독자 뿐만 아니라 작가에게 조차 이 심층심리가 인식되는 경우는 극히 적다. (322-323쪽)
이 책에서 저자가 아마도 가장 힘을 쏟은 부분은 사실 2장의 자료 조사보다는 바로 이 3장의 논의가 아닐까. 본인 스스로 야오이 소설의 팬이라고 밝히고 있는 저자이긴 하지만, 이 3장에서 진행되는 논의는, 야오이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그 장르 내부의 논리를 최대한 설득력 높게 설명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 독자에게 전달이 될 정도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가장 위험하고 또 논쟁적인 부분이 바로 이 3장이기도 하다. 실제로 1장과 2장에서는 굉장히 객관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저자가 3장에 들어와서는 약간의 논의의 비약 및, 야오이 소설에 대한 평가를 위해 다른 장르에 대한 부족한 이해를 보이고 있는 지점이 눈에 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왔다. 물론 이것은, 저자만의 잘못은 아니리라.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에로티시즘이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이 문제 자체가 이미 몇번이나 지적한 바 있지만 너무나 방대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는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단 간단하게, 3장의 논의를 정리해 보자. 남성들의 성행위가, 어떻게 일견 전혀 관계가 없어보이는 여성의 성적 충동을 환기시킬 수 있는가? 그를 위해 야오이 소설 텍스트들은 얼마나 많은 장치를 구비하고 있는가.
많은 경우, 수의 육체는 여성적인 기호를 통해 묘사된다. 수가 왠만한 여자 못지 않은 미소년으로 설정되어 있는 경우는 훨씬 더 자유롭지만, <가는 몸> <가는 허리> <하얀 허벅지> 등등, 일반적으로 여성의 나체를 묘사할 때 사용되는 언어들이 성인 남자인 수에게도 흔히 사용된다. 그리고 나가쿠보가 주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헤테로적 에로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가슴에 대한 애무>가 수에게도 그대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여성의 가슴에 대한 애무는 헤테로적 섹스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이 묘사는 그대로 야오이에서도 공에 의한 수의 애무에 차용된다. 여성의 유두를 묘사하는 문학적 용어들이 수의 유두에도 그대로 사용된다는 점은, 수의 육체가 지니는 여성적인 특질을 한껏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것은, 여성이 남성의 육체에 욕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같은 여성의 육체에 욕정하도록 사회적으로 훈련받아왔다는 지점에 그 근거를 둔다.
그렇다면, 이에 대응하는 공의 신체는 어떨까. 공의 신체는 그 무엇보다 남성답지만 아름답다는 것이 중요하다. 서구에서의 남성성의 기준으로 사용되는, 울퉁불퉁한 근육과 체모는 거의 대부분의 텍스트들에서 묘사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육체는 슬림하나 탄탄하다, 즉 굳이 비유하자면 그리스조각의 남성상에 가까운 미끈한 아름다움, 남성성을 의미하게 된다. 왜 공이 남성들에 의해 남성적이라고 간주되는 요소들을 갖고 있지 않은가에 대해, 저자는 과거 일본 춘화에서 남녀의 관계를 그릴 때, 여성에 대한 능욕물과는 달리 미남미녀의 성관계를 다룬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들면서, 일본 여성에게 있어 성적으로 매력적인 남성이란 마초적인 남성이라기 보다는 미남이라는 말에 더 가까운 남성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것은 현대 여성들에게도 공통되는 감각이 아닌가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이 책에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자세한 것은 (3) 이후에서 논의할 예정)
그리고 성행위에 들어가서도 수와 공의 육체에 대한 묘사는 완전히 달라지는데, 수의 육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보다 감성적이고 보다 여성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상세하게 묘사되는데 비해, 공의 육체는 보다 딱딱하고 보다 남성적인 용어들을 사용하여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혹은 아예 사라져 버리기까지-을 차지한다. 즉, 성행위에서 초점은 수의 육체적 쾌락과, 그의 반응인 것이지, 공의 행동이나 쾌락은 아닌 것이다. 특히 공의 육체에 대한 묘사는 아예 목소리에 대한 묘사와 그의 애무행위 뿐이지, 성행위에서 공의 육체에 대한 묘사는 사실 거의 없다시피하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것은 야오이 소설의 성행위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애널에의 삽입으로 옮겨가는 순간, 양상이 달라지는데 무엇보다 그것은 페니스에 대한 묘사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일단 우케의 경우, 성기인 페니스는 그다지 강조되지 않는다. 능동적인 성적 기구라기 보다는, 공에 의해 주어지는 자극에 반응하여 "사정하고 마는"(마치 여성이 애액을 분비하듯이) 페니스는 남성의 상징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성적 쾌감의 도구로 보는게 더 정확할 정도이다. 이에 반해, 공의 페니스는 말그대로 남성성의 상징으로서, 다른 육체적 부분에 대한 묘사가 극히 적은데 반해 페니스 및 삽입행위에 대한 묘사는 공의 성행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페니스 자체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듯한 묘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공의 남성성을 상징하는 존재로서의 페니스는 그 "강도" 및 "욕정"을 상징하는 도구로서, 극히 추상화된다. 그리고 공의 사정은 어디까지나 능동적인 것으로서, 수의 "사정하고 마는" 피동성과는 완전히 구분된다. 수의 애널에 대해 헤테로적인 에로소설들이 여성 성기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묘사를 사용한다는 점 또한, 우케가 여성성을 체현한다는 점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고 볼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이런 야오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성적인 쾌락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 특징을 찾아내기 위해 저자는, 야오이 소설과 대비되는 장르로서 남성독자를 주된 대상으로 하는 관능소설이라는 장르와 야오이 소설을 대비하여 그 차이점을 찾는다. 나가쿠보의 주장이 또 한번 위태로운 지점이 바로 이 비교를 통한 분석이라는 지점인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논하는 것으로 하고, 일단 나가쿠보의 논의를 따라가 보자.
남성독자를 위한 관능소설 작성 매뉴얼과, 야오이 소설들을 비교하면서 나가쿠보가 가장 큰 차이점을 지적하는 것은 바로 관능소설에서 남성은 자신이 상대하는 여성들을 철저하게 <물화>함으로써 능동적인 쾌락만을 찾는데에 비해, 야오이에서 일어나는 메커니즘은 상자 안의 인용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독자로 하여금 수와 공 양쪽에 다 자기 이입하게 된다는 메커니즘이다. 섹스에 있어 여성적인 묘사를 부여받는 수에서는 일반 헤테로적 에로소설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위치를, 그리고 반대로 남성적인 묘사를 부여받는 공에게서는 남성이 차지하는 위치를, 이 두 가지 전유가 가능한 것이 바로 야오이라는 텍스트인 것이다. 또한, 남성향 에로소설에서 여성은 어디까지나 유형에 가깝지 어떤 특정한 인격을 부여받지 못하는데에 비해(물화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야오이에서는 로맨틱 러브스토리라는 지점 때문에 수와 공에 각각 인격이 부여됨으로써 물화를 회피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이는 레이프라는 표현에서 그 차이가 잘 드러나는데, 관능소설에서 레이프는 어디까지나 철저히 쾌락을 위한 것이고 상대방을 타락시켜 물화시키기 위한 것인데, 야오이에서 레이프(특히 공에 의한 레이프)는, 결국 감정의 격렬함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최종적으로는 로맨틱 러브로 수렴된다는 점에서 나가쿠보는 야오이에서는 레이프 조차 물화를 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레이프 이후에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사랑하는 두 사람의성행위로 끝맺게 되는데, 성인을 위한 성적 매체에서 이렇게 <사랑하는 두 사람의 성행위>가 <로맨틱한 것으로>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야오이 뿐이라는 게 나가쿠보의 주장이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3장에서 나가쿠보가 하는 주장은 지나치게 야오이가 아닌 헤테로 텍스트들에 대해 단정적이며, 야오이를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역시 이어질 포스팅에서 다루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야오이 소설은, (기존의 여성을 위한 매체에서:역주) 잃어버렸던 성애표현을 텍스트에 탈환하고자 줄곧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탐색의 성과는, 순애와 성행위의 가치를 등가로 하여 불가분의 것으로 그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킨 것에 드러나 있다. 종래의 관능소설등에서는 볼 수 없었던, 궁극의 순애로 맺어진 일대 일 커플의 러브러브 해피 성애를 그려내는, 에로 로맨틱 러브 스토리의 탄생이다.
그러나 역으로, 이 순애와 성행위의 밀접함은, 다양한 연애의 표현을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연애와 성행위는 세트가 되어서, 성행위 없는 연애는 불완전한 형태의 것처럼 표현되어버린다. 야오이 소설로부터, 성행위 없는 연애를 그린다고 하는 다양성은 사라지고 있고, 그 대신 성묘사는 과격해질 뿐이다. 이 경향은, 야오이 소설에 어떤 공과를 가져올 것인가.
(3)으로 이어집니다. 가능하면 일요일 오전까지 이 시리즈는 마치고 싶습니다'ㅂ'